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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역대 대통령의 사저들

또 불거지는 '사저 논란'···역대 대통령의 사저들은?박용필 기자 [email protected]수정2016-10-07 23:39:39 입력2016-10-07 16:23:00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종반에 들어서긴 했나 봅니다. 사저 논란이 나오는 것을 보면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국정원이 청와대의 지시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이후 사저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청와대는 ‘사실무근’ 이며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사실인지는 좀 더 두과봐야겠죠. 사저 논란이 불거진 김에 역대 대통령들의 사저들은 어떠했는지, 정리해봤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현재 사저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은‘내곡동 전 사저’입니다. 임기말 이 전 대통령은 기존의 논현동 자택이 아닌 내곡동에 새로운 사저를 건설하기로 하고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함께 사저 부지를 매입했는데 대통령 개인이 부담해야 할 돈을 국고로 충당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시형씨가 매입한 필지는 당시 공시지가보다 싼 값에 매입된 반면 대통령실은 공시지가보다 4배 가량 비싸게 매입해 이씨가 내야할 돈을 대신 부담한 것이라는 의혹 등도 제기됐습니다.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은 결국 임기말 정권을 뒤흔들었고, 사저 건립 계획은 백지화됐습니다. 해당 부지는 국가에 귀속됐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후 기존의 논현동 자택을 재건축해 사저로 삼기로 합니다. 대지 1023㎡(약 310평)에 총면적 327.58㎡(약 99평) 규모의 기존 2층 건물을 허물고 661.2㎡(약 200평)짜리 3층 건물로 새로 지었습니다. ‘내곡동 사저’ 논란 때문인지, 재건축 비용은 이 전 대통령 개인이 부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저 인근에 신축된 경호동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고 67억원이 투입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 사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는 역대 대통령 사저 중 유일하게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향인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 위치한 봉하마을에 낙향하기로 하면서 별도의 사저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별도의 사저를 지은 첫 대통령이 됐고, 사저는 한때 ‘노방궁’이라는 억울한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아방궁’을 뜻하는 이 단어는 이명박 정부 당시의 여권이 봉하마을에 집터와 주변 대지를 합쳐 1만평이 넘는‘노무현 타운’이 형성되고, 대통령 형인 노건평씨의 전용 골프 연습장, 저수지, 정원 등 호화시설이 들어설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붙인 별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지 1만평은 국가 소유로 건립될 경호동까지 포함한 면적이었고, 호화시설이 들어선다는 것도 사실과 달랐습니다. 부지 4262㎡(1289평), 1층 단독주택인 건물 372㎡(112평)으로 지어진 사저는 대지 구입과 건물 설계, 공사비까지 총 12억원 가량이 들어갔습니다. 정작 당시 노방궁 공격을 거들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후 내곡동 사저 부지를 매입하면서 국고 43억 가량을 투입해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부지 매입비 2억6000여만원의 16배가 넘는 돈을 국고에서 탕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에 퇴임 이후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사저 앞은 노 전 대통령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봉하의 명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서거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재단에 사저를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사저는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인 올해 5월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됐습니다. 최근에는 하루 1000명 가까운 인파가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공개된 사저에는 노 전 대통령이 15개월 간 머물며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와 김대중 도서관/ 경향신문 자료 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은 퇴임 이후 별도의 사저를 짓지 않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은 사저이기 이전에 수많은 정치인들을 배출한 ‘한국 정치의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저를 통해 배출된 정치인들을 ‘동교동계’라 일컫기도 하죠.

김 전 대통령은 5·16쿠데타가 일어났던 1961년 이 곳에 입주했습니다. 이후 미국 체류기간을 빼고 1995년 일산으로 이사를 갈때까지 머물렀습니다. 이 곳에서 1971년과 1987년, 1992년 세 차례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평민당과 국민회의 등 제1야당을 탄생시켰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사저에서 55차례나 연금을 당했으며, 도청을 피하기 위해 이희호 여사와 필담을 나누기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1971년의 폭탄 테러, 1972년과 1982년 김 전 대통령 망명 등 ‘동교동 사저’는 김 전 대통령과 ‘동고동락’을 해왔습니다.

그만큼 사저와 관련된 유언비어들도 많았는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지하 벙커가 있어, 이곳에서 측근들에게 정치자금을 안겨준다’는 황당한 소문 등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서재가 있고, 김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측근들과 면담을 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일산으로 이사를 갔던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다시 동교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고, 연면적 198평, 지상 2층, 지하 1층의 양옥으로 새 단장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김 전 대통령을 고려해 실내 엘리베이터도 설치됐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아방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김영상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와 쌍벽을 이루는 ‘정치의 산실’이었습니다. ‘동교동계’처럼 사저가 위치한 상도동의 이름을 딴 ‘상도동계’ 정치인들을 다수 배출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 못지 않게 상도동 사저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 역정을 함께 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던 1969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사저 앞에서 초산테러를 당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엔 가택연금을 당해 23일간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별도의 사저를 마련하지 않고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재건축을 했는데, 외환위기였던 당시에 20억원이라는 큰 돈을 들여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사저만큼이나 노태우·전두환 두 사람의 사저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서울 연희동에 있습니다. 실제로 두 사저 간의 거리는 걸어서 5분 거리로 두 사람은 이웃사촌이기도 합니다.

또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가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함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저는 ‘빨간 딱지의 수난’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두환·노태우씨가 내란죄와 뇌물수수죄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뒤 추징액을 내지 않아 두 사저는 1996년 나란히 가압류 됐습니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저는 강제집행을 피하고 재산세 체납에 대한 압류 등은 일부 풀리기도 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는 ‘빨간 딱지’ 신세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전두환씨가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을 내지 않자 검찰이 재산 압류에 나섰고, 차명이었던 정원과, 본인 명의였던 본채와 별채 모두 추징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참고로 전두환·노태우 씨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국비로 사저 인근에 경호인력이 배치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매년 12억에서 13억의 예산이 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비판이 일기도 했습니다. ‘내란죄를 저지른 중죄인을 경호하는데 매년 10억이 넘는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최규하 대통령


김우식 태통령비서실장이 2004년 최규하 전대통령의 서교동 자택을 방문해 환담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군부 쿠데타로 하야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저는 1조원 대 비자금을 굴렸던 전두환씨의 사저에 비하면 평범합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72년 직접 건립했습니다.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돼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그리고 신군부의 쿠데타로 1980년 8월16일 사임한 후 돌아와 숨을 거둔 2006년까지, 이 곳에 거주했습니다. 참고로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이네 집’이 바로 최 전 대통령의 사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그 이전 대통령들의 사저는 모두 문화재나 사적 또는 기념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등록문화재 412호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저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습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은 1958년 5월부터 5·16 쿠데타 이후 1961년 8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하기까지 이곳에 거주했었습니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가 한국 정치와 민주화의 산실이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저는 ‘5·16의 산실’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육사 5기와 8기생, 해병대 등과 함께 장면의 제2공화국을 전복하는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이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16 혁명 공약, 각계에 보내는 호소문, 포고령 등의 문안이 이곳에서 작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건물 내부 거실 벽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군사정변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친필 서한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서울 중구청은 올초 이 사저와 연계해 동화동 역사문화공원 및 지하주차장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때문에 2년 전 추진하다 좌초됐던 ‘박정희 기념관 사업’을 결국 우회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


윤보선 전 대통령 사저/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적 438호인 윤보선 전 대통형의 사저는 대지 1400평에 건물도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등 11동이나 있는 대저택입니다. 서울 중로구 안국동에 있는 이 사저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태어난 1918년 이후 1990년 7월18일 서거까지 평생을 보낸 곳입니다. 이 사저는 제2 공화국 당시 장면 총리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신파와 대비되는 민주당 구파의 중심지로 5·16 이전 제2공화국 탄생의 막후 장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이화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화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있습니다. 기념물 6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집은 원래 조선 중기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의 집이었습니다. 동국여지비고에는 “규모가 크고 화려해서 서울 장안에서도 으뜸가는 집이었다”고 기술될 정도로 조선 시대의 호화주택 중 하나였습니다. 해방 직후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박사는 돈암장과 마포장에 잠시 기거하다 이 곳을 사저로 삼습니다. 그리고 1947년 10월18일부터 경무대에 입주하는 1948년 8월 12일까지, 그리고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1960년 4월28일부터 같은 해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출 이후 이곳에 ‘조각본부’를 두고 초대 정부를 이끌 내각을 구성했다고 전해집니다.


■김구 주석


경교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역시 경교장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김구 주석의 사저는 서울 종로구 평동에 있습니다. 유형 문화재 129호입니다. 상해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주석이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23일 중국에서 귀국해 1949년 6월26일 서거하기까지 머물던 곳입니다. 또 헌법에서 대한민국이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규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청사이기도 합니다. 김구 주석은 이곳에서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열고,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1949년 6월26일 김 주석이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이승만의 이화장, 김규식의 삼청장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적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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