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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모님 직업이 최고의 스펙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부모님 직업이 최고의 스펙?


박광연·허진무·최민지 기자 [email protected]

수정2016-10-09 18:34:59입력2016-10-09 14:03:00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운전병 보직 혜택’ 의혹에 의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은 서울경찰청 차장부속실장 백승석 경위에게 “(운전병으로 발탁한 우 상경이) 우 수석 아들이라는 건 언제 알았냐”고 물었다. 백 경위는 이상철 서울경찰청 차장의 운전병으로 우 수석 아들을 선발한 당사자다. 백 경위는 “면접하면서 ‘아버지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공무원이라고 했다. ‘어디서 근무하시냐’고 물으니 머뭇머뭇 하길래 ‘빨리 대답해라’ 하니 ‘민정수석으로 근무한다’고 했다”고 답했다. 백 경위는 이어 “면접 후 이상철 차장에게 면접 본 대원이 민정수석 아들이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이상철 서울경찰청 차장은 우 수석 아들의 운전병 특혜 전출 의혹이 제기되자 “면접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부모 직업을 물어보기에 우 수석의 아들인 것은 알았다”고 해명했다. 의무경찰 운전병 선발 면접에서 면접자 부모의 직업을 묻는 것은 ‘일상적 관례’였다.


4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서성일 기자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경찰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 코너링 탁월해서 차장실 운전병으로 선발"

▶[관련기사]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 서울경찰청 운전병 '특혜 전출' 의혹

이른바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이기도 하다)는 비단 의무경찰 면접에서만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원서부터 대기업 지원서에 이르기까지 지원자들은 ‘부모 직업’을 적을 것을 요구받는다. ‘왜 적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적는다.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직업은 합격을 보장하는 ‘프리패스 통행권’인 것일까.


영화 ‘친구’의 한장면. 극중 고등학교 교사(김광규 분)는 고등학생인 주인공 준석(유오성 분)의 뺨을 잡아 흔들며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묻는다. 유오성은 “건달입니다”라고 답한다.

■로스쿨·기업·초등학교…“부모님 직업을 알려달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부모의 직업이 지원자의 합격을 결정한다는 ‘음서제’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 지난 5월 교육부가 전국 로스쿨 25곳의 최근 3년간 입학전형을 조사한 결과, 7개 학교는 지원서에 가족과 친·인척 신상 내용 기재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었다. 이 중 2개 학교는 지원서에 구체적인 보호자 인적사항을 적도록 요구했다.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직업을 나열한 지원자의 사례도 드러났다. 최근 3년간 입학전형 6000여건을 보면, 5명은 자기소개서에 시장, 변호사협회 부회장, 공단 이사장 등 부모와 친·인척의 신상을 특정해 서술했다. 19명은 신상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친·인척이 대법관, 법원 판사, 시의회 의원 등을 지냈다는 식으로 기재했다.

교육부는 부모 직업을 적은 24건 중 8건이 기재 금지 규정을 어겼음에도 입학취소 등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기소개서에 친·인척 인적사항을 기재한 것이 합격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고, 입학을 취소할 경우 대학원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셈이 된다”며 입학취소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실상 처벌을 면제함으로써 ‘현대판 음서제’ 의혹을 되려 증폭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조사 대상 기간을 최근 3년으로 한정하고, 직장명·지위명을 간접적으로 암시한 경우는 문제 사례에서 제외해 로스쿨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왔다. .


▶[관련기사] ['로스쿨 음서제' 파문]“아버지가 판사”“로펌 파트너”…교육부 ‘불공정’ 감싸기

▶[관련기사] ['로스쿨 음서제' 파문]확인하고도 ‘면죄부’

신입·경력사원을 채용하면서 가족의 직업 등 신상정보까지 적도록 한 기업 이력서.

대기업 2곳 중 1곳은 신입·경력사원 입사지원서에 가족의 학력과 직업, 월수입을 적으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경향신문이 대기업 30곳의 이력서를 분석해보니 13곳(43%)이 가족관계, 학력, 직업 등을 물었다. 가족관계를 요구한 대다수 기업은 가족의 최종학력, 직장명, 직위 정보 등을 이력서에 구체적으로 적도록 했다.


▶[관련기사] “아버지 얼마 버시나” 질문까지… ‘음서제’ 논란 키우는 대기업

2016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518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채용 관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 기업의 78.8%가 입사지원서에 가족관계를 적도록 요구했다. 가족관계에는 부모 직업 등을 묻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어 채용 공정성 문제가 생길수 있다.

인권위는 지난 2003년 ‘입사지원서 차별항목 개선안’을 발표해 가족관계 등 36개 사항을 기업 지원서 항목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대다수 대기업이 지키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기업 80%, 입사지원서에 '가족관계' 요구

초등학교 입학 원서에도 ‘부모 직업’이 필요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전국 76개 사립초등학교의 2016학년도 입학지원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25개 학교(33%)가 부모의 직업을 기재하도록 요구했다. 서울의 경우, 39개 사립초등학교 중 10개의 학교가 부모의 직업정보를 제출하도록 했다. 인천에 있는 한 초등학교 입학지원서에는 부모의 학력정보를 기재하는 항목도 있었다.


▶[관련기사] 입학원서에 영어 유치원 경력·부모 직업 요구하는 사립초등학교

■2016년이든 1980년이든 ‘최고 스펙’은 ‘부모님 직업’




tvN 채널의 ‘SNL코리아’ 방송화면 캡처.

지난 1일 tvN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에는 <면접 2016 VS 1980>이란 제목의 꽁트가 나왔다. 한국 사회의 2016년 면접과 1980년 면접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2016년 면접에서 정상훈은 미국 연수, 토익 990점, 토익스피킹 레벨8, 무역영어 1등급, 5개국 회화가 가능하지만 면접관에게 “아랍어 못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듣는다. 1980년 면접에서 유세윤은 “이츠 써니 데이!”같은 간단한 영어를 자랑한다.

2016년 면접에서 이세영은 엑셀, 컴퓨터활용능력, 한국사, 한자, 병아리감별사, 미니어처만들기, 장의사, 우주비행사 자격증을 갖고도 “경력이 없다”며 무시당한다. 반면 1980년 면접에서 유세윤은 “이 주먹에는 열정과 패기가 있다”며 1종보통 운전면허증으로 칭찬을 받는다. 2016년 면접에서 정상훈은 일본 무역문제 해결 방안을 무역용어를 동원해 설명하지만 “신선한 시선이 없다”며 비난받고, 1980년 면접에서 유세윤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처럼 현해탄을 건너가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 꽁트의 핵심은 마지막에 나온다. 2016년 면접에서 이수민은 경력, 스펙, 자격증 모두 하나도 없지만 아버지가 면접관의 학교 동문이자 회사 임원이라는 이유로 “숨은 인재상이랑 딱 맞는 것 같다”며 합격한다. 1980년 면접에서 김소혜는 면접에 지각하지만 역시 아버지의 ‘빽’으로 바로 합격한다. 유세윤은 “저희 아버지도 비디오가게 하신다”고 말해보지만 “가업을 이어 받으시라”는 대답을 듣는다. 시대 상황은 다르지만 2016년이든 1980년이든 최고의 ‘스펙’은 ‘부모의 직업’이라는 씁쓸한 결론이다.


■ 사진·가족관계·출신학교 요구하는 이력서…이제 그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용노동부는 2007년 ‘개방형 표준이력서(역량기반 지원서)’를 만들었다. 표준이력서에는 기존 이력서에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표준이력서는 지원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사진, 가족 관계, 혼인 여부 등의 기재를 요구하지 않는다. 출신학교 대신 최종학력과 전공만 쓰도록 한 것 또한 이 이력서의 특징이다. 지원자가 성별과 나이, 외모 등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정부와 공공기관, 1000명 이상 사업장에 표준이력서를 공급하고 사용을 권고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표준이력서를 채용에 활용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 [관련기사] [사설] 공공기관부터 차별 없는 ‘표준이력서’ 사용해야

고용노동부가 제작한 표준이력서.

지난달 23일 국회와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도 가족관계와 사진, 학교명 등을 기입해야 하는 이력서를 사용해 논란이 됐다. 채용 차별을 철폐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 셈이다. 시민단체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날 여성민우회는 페이스북에 “오늘 고용노동부 주최 2016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 본 이상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공식비치된 이력서에도 사진란이! 사진이 없는 표준이력서를 제작한 것은 고용노동부가 아니던가요?”


▶[관련링크] 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지난 9월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 취업 준비생들이 취업 공고문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9월23일 오전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이 한 중소기업을 방문 면접을 보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고용노동부는 2014년 1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난해 1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했다. 올해부터는 100명 이상 300명 미만의 사업장, 내년부터는 30명 이상 100명 미만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이 법 제5조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 채용 과정의 기초심사자료 표준양식을 정해 구인자에게 권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전히 ‘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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